['토지'하동 평사리] "아따! 여기가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이여?”
소설 ‘토지’ 영감얻은 지리산 자락 30만평 악양들판
촬영무대 평사리엔 초가 50여채, 그 중심엔 최참판댁
 


▲ 드라마 토지의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경남 하동의 최참판댁. 거센 풍랑이 몰아쳤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원작자 박경리는 하동을 둘러본 뒤 영감을 받아 한국 소설사에 남을 걸작 '토지'의 집필에 들어갔다.
“아주 널찍한데. 여기가 그 유명한 악양 들판이구먼.”

들판 한가운데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토지’의 서희와 길상처럼 은근한 솔향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평사리는
원래 지리산 남면 악양골 기슭의 평범한 산골마을이었다.
가까이 있는 문수골, 피아골, 화개골처럼 유명한 지리산 골짜기에 비해 이름도 그다지 높지 않은 곳이었다.
허나 악양골은 지리산 둘레에서도 가장 넓은 들판을 품고 있다.
30만평이나 되는 악양들판, 일명 ‘무딤이들’이다. 소설의 원작자인 박경리 선생도 지리산 품속에 안겨 있는
광활한 이 들판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 소설사에 남을 걸작 토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완벽한 혜택을 동시에 받은 평사리의 모든 길은 최참판댁으로 이어진다.
고샅길 한쪽엔 어깨를 사이좋게 맞대고 있는 초가들 풍경이 정겹다.
이 마을에 있는 초가는 50여채 정도. 대부분 SBS 대하드라마 ‘토지’를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야외세트다.
거의 빈집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10여채는 원래의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에 얹었다.
 ‘토지’를 촬영하면서 생긴 변화다.

“보소. 쪼매만 사가소.”

마을의 칠순, 팔순 노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벌여 놓은 좌판엔 곶감, 도라지, 토란대, 더덕, 늙은 호박 등이 옹색하게 놓여 있다.
노인들의 다소 거칠면서도 정겨운 경상도 말씨에 방문객들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돌담으로 이어진 고샅길 끝, 마을에서 가장 높은 터에 최참판댁이 있다.

“아따, 만석지기 부잣집답게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구먼.”

“그래요.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직접 와 보니까 더 생생해요.”

마을에서 가장 너르고 큰 최참판댁은 원래부터 평사리에 있던 집이 아니라 소설 속의 공간을 현실에 되살린 집이다.
그래도 꽤 공들여 지은 듯 유서 깊은 영남의 여느 고택처럼 아주 멋스럽다.
게다가 관리인이 매일 쓸고 닦으며 정성을 들인 덕에 마치 안주인이 살고 있는 것처럼 깔끔하다.

길상이 거주하던 행랑채,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의 신경질적인 기침소리가 들릴 듯한 사랑채,
최치수의 이부(異父) 동생인 김환과 야반도주한 별당아씨가 머물던 연못 딸린 별당 등엔
넉넉하지만 왠지 적막한 기운이 흐르던 소설 속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뜰 한쪽에선 상처받고 말수가 적어진 서희가 길상과 함께 노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서니 기름진 악양들판의 풍경이 모두 발 아래 펼쳐진다. 서희가 그토록 되찾으려던 그 토지다.

박경리 선생이 25년간 집필한 5부 16권의 ‘토지’는
4만 장의 원고지에 600만 자로 이뤄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이다.
봉건질서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한말에서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60여년을 배경으로 소용돌이치는 나라의 운명 속에서
한많은 삶을 살아가야 했던 여인의 애증을 그려낸 작품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지금까지 두 차례 방송된 ‘토지’는 박경리 원작의 4부까지만 다뤘던 미완성 드라마.
 현재 SBS에서 방영 중인 ‘토지’는 5부 완결 작품을 토대로 진행되는 첫 드라마로 총 50회가 방영될 예정이다.
드라마 ‘토지’는 박경리 원작의 틀을 그대로 따를 예정. 드라마에서 18회 이전까지의 전반부는
 서희의 어린 시절로서 이곳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왕에 평사리에 들렀다면 가까운 고소산성도 올라가 보자.
백제군과 나당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는데,
널따란 악양들판과 섬진강의 새하얀 모래톱이 어우러진 풍광을 조망하는 맛이 제법이다.
20∼30분 정도만 발품을 팔면 성벽에 오를 수 있다.